조주연 미술이론가
1839년 12월에 나온 흥미로운 판화가 한 점 있다. 프랑스의 의회에서 다게레오타입, 즉 은판사진술이 특허 인정을 받고 사진술의 발명이 공식 선포된 바로 그해에 나온 석판화로, 제목은 <은판사진술 광풍>이다. 판화는 발명 즉시 ‘광풍’ 수준으로 인기몰이를 한 사진의 위력을 보여주는데, 거기서 으뜸 요소는 화면의 오른쪽 맨 뒤 배경으로부터 전경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사람들의 장사진이다. 이들은 초상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이다. 전경에는 한 부인이 아이의 손을 잡고 카메라 앞에 서 있다. 빛의 양에 따라 7-10분이었다고 하는 당시의 노출 시간을 감안하면, 사진가가 쉼 없이 촬영을 한다 해도 1시간에 고작 6번을 찍을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화면의 배경에 깨알처럼 표현된 줄 끝의 사람이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촬영의 기회를 잡을 가망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것 같지도 않다. 사람들은 내일 또 와서 줄을 설 것인데, 이는 장사진 외에도 화면 곳곳을 누비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그렇다.
그런데 이 판화에는 즐거운 환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파의 소용돌이에 묻혀 얼른 눈에 띄진 않지만, 화면의 오른쪽 중경을 보면 네댓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목을 맨 나무틀이 늘어서 있다. 이 슬픈 장면의 주인공들은 화가다. 초상화라는 당시 가장 유력한 생계 수단을 사진에 빼앗긴 화가들이 절망하여 목을 맨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대목은 과장 혹은 오판이었다. 사진 때문에 목숨을 끊은 화가는 없고, 오히려 회화는, 앙드레 바쟁의 말대로, 문명 세계의 미술에서 미학적 충동의 발목을 잡아온 심리적 충동, 즉 미라 콤플렉스를 사진에 넘겨준 후, 가시적 현실의 유사한 재현이 아니라 정신적 현실의 상징적 표현을 향해 훨훨 비상해나갔기 때문이다.
사진술의 발명을 선포했던 프랑수아 아라고가 1839년에 내다보았던 사진의 가능성, 즉 이 신기술이 저 하늘의 별부터 이집트의 상형문자까지 다 기록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실현되기 시작했다. 1841년 파리에서 는 『은판 사진가의 유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광경과 기념물(Excursions da- guerriennes: Vues et monuments les plus remarquables du globe)』이라는 은판사진 판화집이 출판되었는데, 이는 벌써 그 시절에 무려 다게르타입 카메라 를 들고(뿐만 아니라 즉석 감광판 제작에 필요한 각종 비품과 장비까지 대동하고) 세상의 진풍경을 찾아다닌 사진가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로부터 한 세기 반이 지나 20세기 후반이 되면, 카메라는 오묘하게도 우리 은하에서 빛나는 별의 개수만큼이나 많다는 뇌세포의 움직임까지 찍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카메라는 이국적인 것부터 일상적인 것까지, 신선한 것부터 진부한 것까지, 육안으로 보이는 것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세상을 다 기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진은 인간의 시각문화를 미증유로 확장하면서 일찍이 19세기 후반부터 현대적 매체의 총아로 떠올랐다. 단 한 분야, 미술만 빼고.
잘 알려져 있듯이, 미술의 현대적 전환은 재현의 거부가 핵심이고 이는 재현의 대상인 현대 사회의 거부로 이어졌으며 이로부터 강화된 것이 산업 문명의 대척점에 예술의 정신성을 위치시킨 반기계론적 미학이다. 기계의 산물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완고한 사고의 장벽 앞에서 사진은 예술이 되고자 회화를 모방했는데, 이것이 예술 사진의 첫 번째 전략이다. 그러나 아카데미즘으로부터 회화주의에 이르는 19세기의 예술 사진은 회화처럼 되기 위해 사진의 매체적 본성을 억압했으니, 이런 자기 부정적 움직임을 타파하려는 사진가가 등장한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다. 대상의 실재와 빛의 기록 그리고 복제 가능성이라는 사진 매체의 특성을 고스란히 인정한 데서 출발한 스티글리츠의 예술 사진1)은 회화주의와의 타협, 실재론의 한계에 의한 좌절을 거쳐 마침내 컷과 크롭을 통해 스트레이트 모더니즘으로 도약한다. 사진 매체의 본성을 고수하는 한 사진은 실재하는 대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나, 컷과 크롭은 그 대상에 실재하는 질서를 제거해서 사진에 대상과 무관한 자율적 질서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회화를 모방하지 않고 사진 특유의 기법들로 대상에 잠재한 미적 질서를 발견해내는 사진, 가령 모종삽이나 피망에서 어떤 아름다운 형태미를 찾아내는 작업2), 이것이 예술 사진의 두 번째 전략이다. 1920년대에 시작된 이 전략은 대략 피사체의 확대와 촬영/인화 기법의 개발을 통해 기록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더 정확히 말하면 기록을 예술로 승격시키고자 하면서 지속되었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부, 특히 존 서카스키와 피터 갈라시 같은 걸출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이후의 사진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면모다.
아이러니는 사진계가 이처럼 현실에서 미적 질서를 찾아내 예술 사진을 구현하려 했던 것과 정반대로, 미술계는 미적 질서가 없는 현실을 사진으로 드러내 예술을 타파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진계와 달리 미술계가 주목한 사진은 19세기부터 사진의 예술 부적격 요건으로 지목되었던 바로 그 특성, 즉 현실을 기계적으로 기록한다는 특성이었는데, 물론 미술계는 사진의 이런 특성을 파편적으로 활용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베를린 다다에서 개발된 포토몽타주가 예다. 여기서 사진은 현실의 편린으로서, 사진을 스펙터클로 이용하는 대중문화와 일상을 초월해 구성된 순수한 예술의 세계를 둘 다 공격하는 양날의 검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반예술 사진이다. 대중문화를 차용하되 예술적으로 비틀어 대중문화도, 예술도 모두 넘어서려는 반예술 사진의 전략은 전후 팝아트와 포스트-팝아트에서 만개했다.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업을 필두로 해 사진 개념주의에서 더 무미건조하게 급진화되고 마침내 픽처 미술가들에 의해 만개한 사진 작업들이 그것이다. 이 같은 미술계의 사진은 순수성을 추구해온 모더니즘의 예술적 구성을 파괴하기 위해 불순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의 사진적 기록에 몰두했으니, 색다른 피사체도, 미적인 시각도 한사코 마다했던 것이 미술계의 반예술적 사진이 정점에 이른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이렇게 보면 현대 미술에서 사진의 운명은 예술 사진이냐 아니면 반예술 사진이냐,
〈폴라, 베를린〉
알베르트 랑거-파치, 에드워드 웨스턴
두 기로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참 괴로운 질문이다. 예술이 되려면 현실을 버려야 하고, 현실에 주목하려면 예술을 버려야 하는 것 같다니? 그런데 정녕 이 두 길밖에 없는 것일까? 답답하기만 한데, 최근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보이는 한 작가에게서 다른 길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국 미술가 트레버 파글렌Trevor Paglen이 그다.
파글렌의 초점은 오늘날 만들어지는 무수한 기계 이미지, 즉 기계가 다른 기계를 위해 만들고 이 과정에서 인간은 제외되어 있을 때가 많은 이미지다. 이런 기계 이미지는 오늘날 각종 공공 기관 및 민간 기업이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검색하고 감시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지며, 우리 눈에 전혀 띄지 않는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축적되는 이 정보 데이터는 오늘날 권력의 원천이다. 만일 우리를 둘러싼 정보 체계가 우리를 소외시키는 비가시성으로 권력을 행사한다면, 그렇다면 그 보이지 않는 정보 체계를 가시화하는 것이 급선무가 된다. 바로 이 급선무, 즉 “대중 감시 및 데이터 수집의 문제와 씨름하는 미술가”가 트레버 파글렌이다.
파글렌의 매체는 사진이다. 그리고 작업의 목표는 초 보안 구역으로 진입해 우리의 “감각에서 사라진” 대상들을 재물질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시야에서 의도적으로 감춰져 있는 대상들은 공간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지상에도 있고 창공에도 있으며 해저에도 있다. 파글렌의 카메라 역시 이 모든 공간을 추적한다. <제한 망원 사진>(Limit Telephotography, 2005-현재) 연작은 세계 도처에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 블랙 사이트를, <다른 밤하늘>(The Other Night Sky, 2007-현재) 연작은 먼 하늘 위에서 지상을 밤낮없이 감시하는 위성을, 두 <케이블> 연작(2015- 2016)은 바닷속에 묻혀 있는 보안망의 물적 기반을 촬영하는 것이다. 고성능 카메라와 망원경, 위성 추적 장치 같은 각종 광학 장치를 이용해 “산꼭대기에서 며칠씩 머무르며” 촬영한 이런 비밀 시설 사진을 파글렌은 “항상 퍼포먼스로” 생각한다. “블랙사이트를 촬영하는 행위는 블랙사이트를 찍은 사진만큼이나 중요”한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을 찍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그가 찍은 사진은 비밀의 폭로와는 거리가 멀다. 연한 로즈골드 색과 하늘색이 파스텔 조로 아른거리는 화면은 마크 로스코의 섬세한 색면 추상을 연상시키고, 푸르른 초원 위에 벽돌집이 늘어선 장면은 윌리엄 블레이크가 ‘푸르고 쾌적한 땅’(green and pleasant land)이라고 찬양한 영국의 목가적 풍경처럼 보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추상화도 풍경화도 아니다. 이는 캡션에서 확인 되는데, 아름다운 추상화 같은 화면 옆에는 “생화학 병기 실험소, 유타/거리는 약 42마일/오전 11:17”(Chemical and Biological Weapons Proving Ground/ Dugway, UT/Distance approx. 42 miles/11:17 a.m.)이라고 적혀 있고, 목가적인 풍경화 같은 화면 옆에는 “요크셔 해러거트 근처에 있는 미국의 감시 기지”(American Surveillance Base near Harrogate, Yorkshire)라고 적혀 있다.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이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을 감추고 있음을 드러내는 작업은 고성능 렌즈를 컴퓨터 제어 장치에 설치해 밤하늘에서 감시 위성의 궤도를 추적한 <다른 밤하늘>에서도 볼 수 있다. 여기서도 위성의 궤도는 어두운 인화지를 가로지르는 희미한 줄무늬처럼 보일 뿐인데, 이 가운데 어떤 것은 19세기에 찍힌 미국 서부의 탐사 사진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두 사진은 모두 숭고하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풍경의 이면은 모두 정찰이고, 이를 드러내면서 파글렌은 풍경을 대하는 미술의 전통적인 관념을 완전히 깨뜨린다.
인간을 중심에 두는 서양 미술에서 풍경은 일차적으로 배경에 불과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은 일찍이 르네상스 시대부터 화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조르조네의 <폭풍우>(The tempest, 1508년경)가 선구적인 예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는 아무 핑계도 없이 풍경 자체만 담은 작품 <풍경>(Landscape, 1526-8년경)을 그리기에 이르렀다. 풍경화의 도약은 17세기의 일이다. 니콜라 푸생과 클로드 로랭이 이탈리아에서 고전주의 풍경화를 발전시키고 있을 때, 네덜란드에서는 얀 반 호이옌과 야콥 반 로이스달 등이 조국의 산하를 실경으로 그렸던 것이다. 풍경화의 발전은 ‘픽처레스크’라는 용어를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과 결부시키는 미학 개념으로 정립했으며, 클로드의 풍경화가 특히 인기를 누렸던 18세기 영국에서는 그의 그림에 나오는 것 같은 풍경으로 정원을 조성하고 그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풍경화의 발전에 힘입어 픽처레스크 개념은 단지 고전적 아름다움에 국한되지 않고 소박한 풍경도 포함할 정도로 확대되었으며, 이는 19세기 후반 인상주의가 현대 도시의 일상적 풍경을 탐색하면서 더욱 확대되었다. 기법과 소재는 다를지라도, 이 모든 풍경화가 찬양하는 것은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파글렌이 제시하는 것은 하나의 장르로서 풍경이 좀처럼 순수하지 않다는 것, 즉 풍경은 폭력 행위, 그러니까 강탈, 재난, 죽음을 일으키는 행위를 숨기는 가면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풍경에 급진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을 가리키기 위해 파글렌이 만들어낸 용어가 ‘실험 지리학’(experimental geography)이다. 공간에 특히 유념하며 만들어진 작업을 대변하는 이 용어는 “만일 인간의 활동이 공간과 불가분하게 얽혀 있다면, 새로운 형태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새로운 공간들을 생산해내는 작업과의 변증법적인 관계 속에서만 생겨날 수 있다”는 파글렌의 신념을 담고 있다. 이는 선진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적 지도’를 그려야 한다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요청에 부응한다. 파글렌이 보여주는 이 대상들은 대개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그럼에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본, 감시, 통제의 체계 전체를 인식할 수 있도록 우리를 끌어들일 수 있다.
파글렌의 작업은 사진이지만 그가 비판적으로 참고하고 끌어들이며 활성화하는 것은 풍경화라는 회화의 전 역사다. 사진 매체의 특성을 오롯이 간직한 채 회화 매체의 역사를 준엄하게 비판하는 사진, 이것이 동시대적 사진의 쾌거가 아닐까?
조주연
200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미술이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에서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미술론을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이후 그린버그의 현대미술론이 배제한 모더니즘의 타자 아방가르드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로 연구범위를 확장해 현대 미술의 미학적 기원과 역사적 전개를 입체적으로 포괄하기 위한 연구에 전념해왔다. 현재 서울대 미학과에서 현대 및 동시대 미술과 사진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현대미술 강의』, 『미학으로 읽는 미술』(공저), 『미학』(공저)이 있으며, 『실재의 귀환』, 『예술과 문화』, 『60년대 미술』, 『순수예술의 탄생』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