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욱 프로젝트룸 신포 대표
우리는 왜 사진을 찍는가? 무언가를 기록하고 기념하고 남기기 위해서? 그건 사진 말고도 글이나 그림으로도 가능한데, 동영상은 어떤가? 사진보다 동영상이 훨씬 더 생생하게 기록을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사진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나를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일상에서 우리는 사진을 습관적으로 찍고 SNS에 올리고, 공유하고, 세상에 넘쳐나는 사진 이미지를 매일 소비한다. 사진은 우리 들의 삶에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질문을 사진가들에게 하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다. 특히나 사진 예술가들에게 이 질문은 어쩌면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 될지 모르겠다.
작가들은 말한다. “내 작업의 주제는, 내 의도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이러한 것이다.”
제각기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이 무엇을 의미하고, 그 동기가 무엇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사진 이미지 그 자체는 말이 없다.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사진만으로는 안 된다. 사진만으로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사진이 텍스트처럼 읽히게 잘 짜인 장면을 구성해야 한다. 그렇게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작가 의도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관객이 작가가 사용하는 코드를 충분히 숙지하고 공유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사진은 코드화될 수 없는 것도 노출하기 때문에 단지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라면 사진 옆에 작가의 의도와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텍스트로 붙이거나 말로써 설명해야만 한다.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일을 사진가는 굳이 사진으로 말하려 한다. 사진은 말이 아니라 이미지이기 때문에 언어의 규칙을 적용할 수 없고, 언어의 문법을 적용한 사진은 차라리 말로하기보다 훨씬 어렵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말로 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진 이미지의 특수성은 무엇인가? 사진가는 근본적으로 이 질문에 답할 수밖에 없다.
이 전시의 의도는 이제 막 대학원 졸업을 목전에 둔 신진 작가를 포함해서 모두 9명의 사진가에게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응답하는 인터뷰를 책으로 묶고, 그중에서 제시된 작업을 전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과 전시는 기존의 심층 분석의 명료한 작가론과 다르고,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일도, 작품 주제를 논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라는 질문에 반응하는 작가들의 태도와 이를 지켜보는 관객의 의식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와 같은 질문을 우리 스스로가 자문하지 않으면 사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 이미 그런 상태지만, 그것은 사진의 과포화가 아니라 사진에 중독된 무감각이 아닐까?
질문은 반복된다.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권기태 “사진은 그 장소와 그 시간대에 가야만 촬영할 수 있다. 경관과 풍경을 집중해서 봐야만 한다. 처음에 바라보면서 해석한 것, 중간에 해석한 것, 어느 정도 촬영을 진행하고 나서 해석한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이 재미있다. 이런 매체특성이 창작자로서 나를 사로잡는다.”
김승구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 영상처럼 구구절절한 느낌보다는 더 함축적이고 조형적으로 현실의 상황들을 기록하고 재배열해서 내가 생각하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다. 사진은 기다림을 극대화하는 예술이다. 밑도 끝도 없이 현장에서 기다리다가 직관적으로 기록하는 그 기다림의 시간들. 최대한 형식을 배제하고 사진의 기초적인 방법으로써 일관된 자세로 기록해서 특정 현상을 통해 사회를 분석해보려 한다.”
김신욱 “작가가 현실 속에서 잘라온 사진이라는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미처 못 본 풍경이다.
사진의 매력은 그것을 보면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작가로서 사진 매체에만 집착하지는 않는다. 사진이라는 평면 이미지만으로는 충분히 보여주기 힘든 이야기가 있다. 그동안 사진을 잘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앞으로 꼭 사진만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다른 매체 가 필요하면 같이 할 생각이다.”
김천수 “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기는 문제점이나 오류를 찾아내는 것에 관심 있다.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 있는데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나한테 가장 편한 매체가 사진이다. 동시에 사진이 발 전하면서 생기는 오류도 있는데 그것이 사회적 오류의 맥락과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사 진의 새로움과 오류, 그중에 한두 가지가 내 작업으로 연결된다.”
김태동 “사진은 내 감각과 심리를 대변해주는 매체다. 그리고 세상과 이야기를 나누는 통로다. 최근에는 분류, 통계, 개연성과 관계된 작업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때마다의 관심사들을 사진을 통해 실험해 보는 것도 이 직업의 이유이다. 사진은 여백이 많은 매체다. 그래서 상상할 수 있는 게 많고, 테크놀로지를 벗어나면 더 재밌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매체다. 사진은 증명의 영역에서 더 확장해나갈 것이다.”
노기훈 “왜? 사진은 지금 있는 것들밖에 찍을 수 없을까? 왜 사진은 그 순간을 찰나를 누릴 수밖에 없을까? 내가 백 년 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때 찍을 수 없을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 환경 속에 놓여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건 크게 없다. 아무리 사진가가 대상에 애착심을 가져도, 이미 사진이라는 대상은 감정적인 차원을 떠난 오브제다. 어떤 표면에 대해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 사진은 사진가가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말과 그것이 지시하는 이미지의 불합치, 사진은 아무것도 그것들을 포용해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들이 해결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사진가는 어떤 변화해가는 과정들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사진의 태도들, 그것들이 긴 작업 안에서는 쌓인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때 가서도 비슷한 어떤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사진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신혜선 “연출한 장면이건 자연스러운 상황이건 간에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을 때 그걸 보고 셔터를 누를 때 굉장히 기쁨을 느낀다. 나한테는 그것이 원초적인 동기인 것 같다. 와 닿는 장면을 만나 사진으로 찍을 때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다. 사진 작업이 또 흥미로운 것은 현실을 찍었는데도 찍고 나서 보면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인물이나 자연이나 정돈되지 않고 세련되지 않고 흐트러지고 신산한 광경을 보면 재미있다.”
정지필 “어떤 화가가 엄청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았다. 마치 사진을 찍는 것 같았다. 화가는 자신이 본 것,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변형, 조합해 그린다. 그렇다면 그 화가를 생화학적인 감광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빛에 반응해서 본 것을 머릿속에 담았다가 그렸으니까. 조형예술의 모든 매체가 사진같이 느껴졌다. 세상 만물이 태양이 그리는 그림이다. 이것은 내 작업을 관통하는 대주제이다.”
정지현 “사람의 눈으로 본 것과 카메라로 본 것이 다르다. 우리는 거기서 필요한 정보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소통한다. 내가 촬영하는 대상들은 모두 변화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처음의 기획서대로 되는 경우는 없다. 그것이 또 재미있기도 하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질문에 대한 사진가들의 반응은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사진 매체의 한계성을 드러낸다. 이것은 사진 장치를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현상, 즉 자신을 창작 ‘주체’의 자리로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예술가들에게 이것은 치명적인 것이 아닐까? 그러나 창작 주체의 자리에 위치하는 ‘작가’라는 개념은 모더니즘의 미학적 산물이다. 특정한 시기에 서구에서 사용했던 작가라는 창작 주체의 개념은 오늘날 동시대예술에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작가의 위치는 바뀌었다. 관객은 이제 과거 작가가 차지했던 그 자리에서 사진을 보면서 정보를 생산하고, 의미를 만들며, 세계를 재현한다. 정말 그럴까? 어쨌든 사진의 탄생 이후 사진가가 작가로 인정받은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미술계에서 시도한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반예술’의 관점에서 비롯되었고(1960년대 중반 이후), 급기야 사진은 예술논쟁의 종지부를 찍고서야 그 예술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 부분은 서울대 미학과 조주연 교수의 글 《예술 사진이냐 반 예술 사진이냐, 그런데 회화의 대체나 해체 말고 다른 길은 없나?》에서 사진예술사 전체를 간결하게 정리하면서 놓치지 않고 설명되고 있다. 문제는 동시대 예술의 지형에서 작가의 위치가 변한 이 상황에서 그렇다면 이제 사진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조주연은 그 대안의 사진가로서 트레버 파글렌(Trevor Paglen)의 작업을 제시한다. “파글렌의 작업은 사진이지만 그가 비판적으로 참고하고 끌어들이며 활성화하는 것은 풍경화라는 회화의 전 역사다. 사진 매체의 특성을 오롯이 간직한 채 회화 매체의 역사를 준엄하게 비판하는 사진, 이것이 동시대적 사진의 쾌거가 아닐까?”
여기에 동의하면서 기획자의 의견을 덧붙이고 싶다. 사진은 처음부터 창작 주체의 자리는 없었다, 그것은 모더니즘 사진예술에서 강요된 것일 수 있다. 주체를 욕망하는 것은 작가다. 그러나 사진가 는 그 욕망을 충족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진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작가라는 개념의 자리를 깨트리러 오는 상상력을 지닌 자유로운 주체를 환대하는 자리를 만들어 게임의 장에 초대하는 호스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