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학 기기가 매개하는 예술의 형식을 통해 역사적인 현실의 풍경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동시에, 사진 매체가 크게 변모하고 대중화된 동시대 디지털 환경 속에 서 유효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가능성과 방향성을 고민하며 일종의 미술 형식으로서의 사진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개인전으로 <달과 빛>(금호미술관, 서울, 2020), <1호선>(KT&G 상상마당 홍대, 서울, 2016), <미장센>(공간 지금여기, 서울, 2015) 등이 있으며, 단체전 <젊은 모색 2021>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1), <서울사진축제>(서울시립미술관 세마창고, 서울, 2017)등에 참여했다. 현재 이주와 이동을 목적으로 한 임시적인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진의 도서관>을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다.
www.no-ki.com
개인전으로 <달과 빛>(금호미술관, 서울, 2020), <1호선>(KT&G 상상마당 홍대, 서울, 2016), <미장센>(공간 지금여기, 서울, 2015) 등이 있으며, 단체전 <젊은 모색 2021>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1), <서울사진축제>(서울시립미술관 세마창고, 서울, 2017)등에 참여했다. 현재 이주와 이동을 목적으로 한 임시적인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진의 도서관>을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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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석-동암 매트리스와 쇼파, 2014
작가가 운영하는 《사진의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기 전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곧 그가 왜 ‘사진의 도서관’이라 이름 붙였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사진가중 가장 날 것 같은 사진을 찍는 노기훈 작가는 사진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진가다. 예상대로 그는 사진매체의 속성 그 중에서 다큐멘터리사진의 신화를 깨는 작업을 넘어 사진의 죽음을 선언하려 한다.
인터뷰_이영욱
작업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
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기 시작하면서 기자가 되고 싶었으나 기존 언론의 데스크에서 생각하는 사회적의식과 나의 생각이 합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제도권 안에서 나의 사진이 소스로써 활용될 수밖에 여지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군대 갔다 오고 촛불집회가 시작됐던 광우병 사태가 저에게는 한 번에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만약에 민주화 운동이 끝난 시기였다면, 기성사회화 되면서 깨달을 수밖에 없을 텐데, 그 때 지방에 살다가 서울에 와서 본 그런 문화적 충격과 더해서, 기자로서 할 수 있는 것 보다는 예술매체로서 사진을 다루었을 때 그것이 파급력이 있든 없던, 나로서는 만족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이것저것 많이 해 봤죠,
그때 학생 때는 연출된 사진을 많이 했는데 그것들이 기초가 드로잉을 위주로 하고 돈을 엄청 모아서 실현하는 방향으로 되는... 학창시절에 엄청 열심히 했죠, 돈을 모아가지고 소도구도 만들고, 조명도 빌리고 배우들도 쓰고 하면서... 한 번은 사진을 담은 외장하드가 뻑이 났는데, 그 사진들이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거는 돈만 있으면 언제고 실현 가능하고 심지어는 손가락만 까딱하고 할 수 있는 거니깐, 그때 컷 당 하나 찍는데 100만 원 이상 든 것도 있었어요. 이것저것 따지면... 그런데 그 사진은 안 아까운데, 군대 제대하고 한창 방황할 때, 뭘 해야 할지, 사진은 해야 하는데, 가정형편도 그렇고, 도대체 눈앞이 보이지가 않았어요, 한창 방황하고 술 마시고 친구들이랑 구미 있는 대학도 못간 공장 애들과 먹고 다니는데 그때 찍은 날 사진들이 들어있었어요. 그때 핸드폰 사진들은 굉장히 구렸거든요...그런 사진들을 똑같은 외장하드에 백업해 놓았는데 그 사진들은 아까운거에요. 그때부터 사진이란 걸 다루어야 한다면 명확한 전제 조건이 성립 됐구나... 그때부터 연출해서 찍는 것 보다는 꼭 사진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자면, 그런 스냅 사진들이나, 내 친구들이 있던 그 사진들을 다시 볼 수 없음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그로부터 2009년에 구미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더 이상 이제 만드는 사진보다는 나중에 갤러리나 상업화랑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생각은 없었 고, 지금생각하면, 자아실현이나 자의식의 발로였던 것 같아요, 그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모두가 그렇겠죠! 20대 중반에 뭐...그렇게 하다가 구미라는 작업을 실현하게 되었고, 더 이상 제가 다른 식의 방식을 택할 이유는 이미 외장하드가 뻑 나면서부터는 없어지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막연히 구미라는 곳을 찍어 보자. 지방에 있다가 서울에 왔는데 촛불집회가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한국에 격차, 시차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남녀 간에 시차나, 지방과 서울 간에 시차,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간의 시차가 그런 것들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보면 유달리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빨리 해오면서 여러 가지 시차가 생긴 게 아닐까? 유치하게는 빈부격차도 있지만, 그런 것 보다는 단순히 같은 사람으로 사는데, 왜 내 친구들은 뼈 빠지게 3교대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서울의 불빛이 아롱거리는 소용돌이 속에서 촛불 하나 들고, 뭔가 자기주장을 해야 되고, 하는 것들이 혼란스럽게 다가왔죠. 그렇게 해서 2009년부터 틈틈이 계속 되어온 <구미>라는 작업은 만약에 다른 작업에 손을 대더라도, 제 작업에 대한 작업이 되어야만하겠다 생각을 했어요. 모차르트의 레퀴엠도 계속 그것만, 단테도 하나의 큰 주제를 가진 작품이 있고, 그거는 평생 동안 써왔잖아요. 계속생각하고 맴도는 어떤 것, 작업에 대한 작업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시리즈로 2-3년에 한 번씩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학적으로 빗대자면 소설에도 단편보다는 장편의 호흡이 있잖아요. 엄연히 다른 장르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호흡을 하는 게... 제 인생에 사진 작업이란 것이 들어왔을 때, 저도 행복해 질수도 있고, 계속해서 꾸준히 나아갈 수 있다는 그런 확신 같은 것이 들었죠. 게다가 다큐멘터리 사진은 짧은 시간 안에서 보여주는 방식이 크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해서 2009년부터 작업을 하다가 길가에서 섭외하면서 찍고 했는데, 계속 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어차피 아는 친구들의 모습이 구미의 모습같이 보이는 거예요, 얘네 들이 뭐 현재진행이잖아요 항상 시간은 동조돼서 흘러가니깐 얘네 들이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갑자기 벼락부자가 될 수도 있겠죠! 반장이 되고 팀장이 되고, 그것도 하나의 뭐~. 제가 결정할 수 없는 부분으로서 다큐멘터리사진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학생 때는 연출된 사진을 많이 했는데 그것들이 기초가 드로잉을 위주로 하고 돈을 엄청 모아서 실현하는 방향으로 되는... 학창시절에 엄청 열심히 했죠, 돈을 모아가지고 소도구도 만들고, 조명도 빌리고 배우들도 쓰고 하면서... 한 번은 사진을 담은 외장하드가 뻑이 났는데, 그 사진들이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거는 돈만 있으면 언제고 실현 가능하고 심지어는 손가락만 까딱하고 할 수 있는 거니깐, 그때 컷 당 하나 찍는데 100만 원 이상 든 것도 있었어요. 이것저것 따지면... 그런데 그 사진은 안 아까운데, 군대 제대하고 한창 방황할 때, 뭘 해야 할지, 사진은 해야 하는데, 가정형편도 그렇고, 도대체 눈앞이 보이지가 않았어요, 한창 방황하고 술 마시고 친구들이랑 구미 있는 대학도 못간 공장 애들과 먹고 다니는데 그때 찍은 날 사진들이 들어있었어요. 그때 핸드폰 사진들은 굉장히 구렸거든요...그런 사진들을 똑같은 외장하드에 백업해 놓았는데 그 사진들은 아까운거에요. 그때부터 사진이란 걸 다루어야 한다면 명확한 전제 조건이 성립 됐구나... 그때부터 연출해서 찍는 것 보다는 꼭 사진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자면, 그런 스냅 사진들이나, 내 친구들이 있던 그 사진들을 다시 볼 수 없음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그로부터 2009년에 구미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더 이상 이제 만드는 사진보다는 나중에 갤러리나 상업화랑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생각은 없었 고, 지금생각하면, 자아실현이나 자의식의 발로였던 것 같아요, 그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모두가 그렇겠죠! 20대 중반에 뭐...그렇게 하다가 구미라는 작업을 실현하게 되었고, 더 이상 제가 다른 식의 방식을 택할 이유는 이미 외장하드가 뻑 나면서부터는 없어지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막연히 구미라는 곳을 찍어 보자. 지방에 있다가 서울에 왔는데 촛불집회가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한국에 격차, 시차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남녀 간에 시차나, 지방과 서울 간에 시차,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간의 시차가 그런 것들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보면 유달리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빨리 해오면서 여러 가지 시차가 생긴 게 아닐까? 유치하게는 빈부격차도 있지만, 그런 것 보다는 단순히 같은 사람으로 사는데, 왜 내 친구들은 뼈 빠지게 3교대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서울의 불빛이 아롱거리는 소용돌이 속에서 촛불 하나 들고, 뭔가 자기주장을 해야 되고, 하는 것들이 혼란스럽게 다가왔죠. 그렇게 해서 2009년부터 틈틈이 계속 되어온 <구미>라는 작업은 만약에 다른 작업에 손을 대더라도, 제 작업에 대한 작업이 되어야만하겠다 생각을 했어요. 모차르트의 레퀴엠도 계속 그것만, 단테도 하나의 큰 주제를 가진 작품이 있고, 그거는 평생 동안 써왔잖아요. 계속생각하고 맴도는 어떤 것, 작업에 대한 작업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시리즈로 2-3년에 한 번씩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학적으로 빗대자면 소설에도 단편보다는 장편의 호흡이 있잖아요. 엄연히 다른 장르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호흡을 하는 게... 제 인생에 사진 작업이란 것이 들어왔을 때, 저도 행복해 질수도 있고, 계속해서 꾸준히 나아갈 수 있다는 그런 확신 같은 것이 들었죠. 게다가 다큐멘터리 사진은 짧은 시간 안에서 보여주는 방식이 크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해서 2009년부터 작업을 하다가 길가에서 섭외하면서 찍고 했는데, 계속 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어차피 아는 친구들의 모습이 구미의 모습같이 보이는 거예요, 얘네 들이 뭐 현재진행이잖아요 항상 시간은 동조돼서 흘러가니깐 얘네 들이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갑자기 벼락부자가 될 수도 있겠죠! 반장이 되고 팀장이 되고, 그것도 하나의 뭐~. 제가 결정할 수 없는 부분으로서 다큐멘터리사진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부분들이 다큐멘터리라?
반동도 있었죠 뭐~. 다큐멘터리사진이 다루는 것들이 너무 고루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거예요! 구도나 이런 것들이, 또 흑백의 어떤 형식적인 틀이 너무나 갖추어져 있고 다큐멘터리사진은 찍지만 다큐멘터리사진에 대해서 얘기한 사진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구지 해왔던 다큐멘터리의 주요한 무기들 같은 것들을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나만의 할 수 있는 것들로 궁극적으로는 다큐멘터리사진매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마침 운이 좋았죠. 구미출신에다가 그런 환경도 있고, 또 익숙하게 다큐멘터리가 다루어온 ‘여공’이라는 주제도 있잖아요? ‘공장단지’, ‘노동자’, 뭐 이런, 그래서 이런 것들을 좀 더 다른 식의 사진으로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친구들을 대상으로 정했어요. 모르는 사람 찍지 말자. 그렇게 하다보니깐 지금 12년 째 그런 작업을 했고, 항상 그런 물음들로부터 중간 중간 <1호선> 같은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두 작업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 하나요?
사람은 분명 찍지만 <1호선>은 모든 것들이 랜드스케이프(Landscape)라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구미 작업은 풍경을 찍더라도 포트레이트(Portrait)라는 생각이 측면이 강했죠. 제 스스로 깊숙이 개입된 기억이나 장소를 다루다 보니깐, 같은 사진에서 다루는 대상들을 바라볼 때도 어떤 관점에 서느냐에 따라서 많이 다르구나! 셔터를 누르는 찬스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 구나!
구미작업은 초상사진이고, 1호선(Line 1)은 풍경 사진이라 했는데?
관점이나, 대상과의 간극, 관심도라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환경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소설로 치면, 3인칭이냐 1인칭이냐, 나로서 서술되는 것들은 분명히 서술어가 달라지는데, 또 3인칭으로 신적 자아가되면 또 서술어가 자체가 달라지는 어절 수 없는데... 소설이야 설정해서 이렇게 잡아보자 할 수는 있지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 환경 속에 놓여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건 크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제가 1호선에 애착심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미 사진이라는 대상은 감정적인 차원을 떠난 오브제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어떤 표면에 대한 이야기밖에 할 수 없구나! 그래서 짧은 사진의 역사에서 다큐멘터리사진이 정형화돼서 나타났지만, 굉장히 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 (웃음)너무나 자만하지는 않았나?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마치 뭐 카메라를 들고 착한 마음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할 것 같았던 시기를 이미 지나왔고, 사회적으로 자본주의를 욕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자본주의에 다 흡수될 수밖에 없고, 이제는 그런 것들을 좀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도구화로서 바라볼 수 있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되지 않나? 그래서 1호선 작업들도 나오고, 어쨌거나, 장소라는 미련을 버리지 않고 일본에 가서도 그러한 면을 발견을 하려고 노력하고, 장소라는 대상을 그렇게 바라보려고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어떻게 사진으로 드러나죠? 작가 개인의 서사와 연관된 것을 모르고 보았을 때, 충분히 그 차이를 관객은 느낄 수 있나요?
관객은 당연히 저의 서사를 모르기 때문에 제가 느끼는 것과 동일하게 그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것을 사진의 형식적인 틀로 그 차이를 드러내고 싶지는 않아요. 그것은 작가만의 고유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착각 같기도 해요, 그 차이를 사진으로 나타내려면 형식적인 틀로 나타내는 게 가장 쉽겠죠! 결과적으로 그 몫은 관객이 가져가고 같이 공유하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사진이라는 것 자체에서 완전한 사진 찍는 작가자체가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때문에 그런 경험들이 중요한 지점인 것 같아요.
불일치, 그런 경험을 작가와 관객이 공유한다? 말과 그 이미지와 그것들의 불합치, 찾지 못하고 계속 사진에 대한 것들을 말이 계속 작가들로부터 나오고, 밖으로부터 도 나오는데 결국 사진이 아무것도 그것들을 포용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들이 해결 안 돼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쌓여온 사진들의 양 그리고 어떤 변화해가는 과정들에 굉장히 민첩하게 반응하는 사진적인 태도들 그것들이 긴 작업 안에서는 쌓인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그때 가서도 비슷한 어떤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발생되는 것이 사진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종결되지 않는다는거.
계속 문제는 발생할 것이고 작업 안에서~
그렇죠. 예! 누구 하나, 심지어 작가도 그 사진에 관해서 정의할 수 없는데, 계속해서 말하는 의도만 해도, 구미라는 작업에 관한 저만의 생각들은 계속 변화고 있고 그것들은 사진은 계속해서 처내고 있고, 그런 것이 미술이나 다른 매체에서 하나의 한고한 경계를 갖는 재미있는 지점이 아닐까!
작가라는 개념, 전통적인 작가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어려운, 사진에는... 그런데 또 다른 작가를 요구하는?
전시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들이 그것도 어떤 과정 속에 계속 위치하는 것 같아요. 전시가 되는 장소, 전시되는 어떤 시기, 계속해서 전시를 하게 되면 부끄러워지는 거죠! 작가는. 전시를 아무리 완벽하게해도 그거는 내가 잠시 했던 그런 사진적인 순간하고는 매번 다를 수밖에 없으니깐.
일본에 가서 했던 작업은 <구미>나 <1호선>작업하고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형식적으로도 그렇고, 그게 또 시간과 장소가 바뀌면서... 일본 작업 좀 얘기해 주세요
네. 일본 작업 같은 경우에는 음~. 비슷한 흐름인데, 왜? 사진은 지금 있는 것들을 밖에 찍을 수 없을까? 왜 사진은 그 순간을 찰나를 누릴 수밖에 없을까? 내가 백 년 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큐멘터리사진을 그때 찍을 수 없을까?(웃음) 왜 그것에 관한 시도를 할 수 없지? 어떻게 보면 우화 같은 거죠. 일본이라는 장소가 시간차가 한국하고 많다고 느꼈고, 그때가 마침 1호선 작업을 전시마무리하고 난 이후였는데. 1호선에서 뭔가 감은 왔지만, 확실히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들이 이번에는 좀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뭐~ 전후가 바뀌었지만, 가마쿠라에 가다보니깐 그렇게 생각이 됐지만, 그곳에 있는 근대적인 요소들, 그렇게 사진같이 근대 성이라는 것이 뭘까? 사진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근대성이 뭘까?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인공의 빛들을 봤는데, 아! 이것이야 말로 사진이 걸어온 짧은 역사에서 큰 변역이었지 않나!
옛날에는 낮 사진 밖에 못 찍다가, 뭐 달빛이야 있었겠지요. 그런데 인공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빛이라는 조명이 나타남으로 인해서 새로운 시각장이 열린 것이잖아요? 사람 눈으로 열린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시간대를 인간이 경험하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기도 하고, 근대라는 이미지는 그런 가능성과 빛과 또 사진매체로 봐서도 새롭게 모여드는 한 줄기 빛을 보는 그 순간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이 일본이라는 밤거리를 나만의 시선으로 빛이라는 감각에 의존해 순전히 반응해서 찍어보자. 다큐멘터리사진이라는 그런 내용과 주제를 떠나서 이 빛이라는 감각, 이 밤이라는 곳에서 조명이라는 것들을 맞이했을 때, 그게 아마 이 눈동자 자체가 사진의 눈이고, 그 시대 근대인의 눈이고, 완벽한 합치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빛을 따라서 경로를 정해놓고 사진을 찍었죠.
사진과 인공조명의 탄생은 곧 근대와 일치하는 지점이 있고, 이것이 오늘날의 현대로 이어졌다는 것이죠? 상상하면서...
그렇죠! 제 나름대로는, 왜냐하면 상상할 수밖에 없는 게, 일단은 지금시기에 살구 있기 때문에 그걸 도저히 느낄 수도 없고, 그리고 저는 근대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인 나라 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거죠. <1호선> 작업을 하면서도 그렇고, 순전히 그게 근대라는 것이 불쑥 삽입이 된 거지, 이거를 일본처럼 맞이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다보니 까 이런 의미의 엇갈림, 이게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단순히 사진의 눈이 돼서 빛에 반응하는 게 오히려 더 내가 못 느낀 근대가 있다면,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근거가 더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하나의 장치로 일본의 1호선이 30km로 비슷해요. 도쿄에서 요코하마까지 밤이라는 아주 사진에 특색 화된 시간대, 야경사진이라는 말이 따로 있잖아요, 그 시간대를 선택해서 작업을 했었죠. 낮 시간 동안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어떤 일상성 안의 공간이 아니라 그곳과 벗어난 환상의 공간같이 그런, 글쎄 뭐 가마쿠라라는 공간에 가서, 유달리 사람들이 굉장히 스킨십도 하고 일식도 바라보고, 후지 산도 바라보는 숭고함, 이런 그런 것들이 강조되는 시기들이 사진에 있었잖아요. 뭔가 걸치고, 찰나를 담고, 결정적 순간들, 이 순간만큼은 그 시기에 있던 형식적인 것을 빌려와서 느끼려고 노력을 한다면, 그게 전시라는 최종과정을 통해서 그시기를 어떻게든 보여주지 않을까? 비록 경험도 안 해봤고, 느낄 수도 없는 그런 시간대지만, 사진이라는 형식을 매트나, 사쿠라 나무액자나 이런 것을 가져와서 지금 없어지고 있는 형식들을 보여주면 어느 정도 당위성이 생기지 않을까? 사진매체를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깐 숭고미를 갖고 싶은 찬양하는 그런 시기, 근대가 있든데.
그렇죠, 그게 잘 황홀하게 유지되고 있는 데가 일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문화적으로나, ‘ 다른 식으로 장인이라든가, 공예, 사진을 공예로 바라보는... 좀 많이.
그래서 흑백사진에 프레임도 원으로 그렇게, 의도적으로 장식미를 주려하는...
네. 액자자체도 굉장히 수공이 들어가고, 종이도 희소성이 있고, 그런 식으로 비례나, 이런 것들에 관한, 요즘은 비례, 조화나 균형미가, 구성이 무너진 측면이 강하잖아요, 이제 이미지 자체가 계속 무빙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매트 안에 결속되어 있는 사진이미지는 굉장히 오래된 형식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제의식으로 봐서는 숭고와 결정적 순간을 담고, 조형성을 극대화하는 이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스타일이라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것은 그냥 스타일이다. 이것 이상으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물론 그것이 유효했을 특정시기가 있을 수는 있었죠. 의미 자체는 계속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완고한 어떤 형태로 소바집 사장이 소바에 대한 형태를 만들어서 100년 1000년 계속 할 수 있으면 그것이 역사가 될 수 있지만, 사진이라는 어떤 형식을 가지고, 이미지를 가진 명확한 시각적인 매체에서는 이것은 그냥 스타일 뿐인 것 같다.
사진 그 자체는 결코 스타일을 가질 수 없는데, 근대는 스타일을 가짐으로써 예술이 되거나, 다큐멘터리에서 추구하려고 했던 것도 하나의 스타일 일뿐이다?
네. 사진은 한 번도 독립된 매체로 스스로 인정 받지 못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웃음) 사진은 매우 쉬운 매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동하는 방식이... 그러니깐 해석하기가 쉽다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너무나 익숙한 것이죠. 시각적 충격을 주는 전쟁이미지, 포르노이미지, 그런 것들에 관한 이미지는 사진 이외의 것들에서도 발견되는 예술도 많고, 이미 피로감도 많아졌고, 더 이상 신기한 것들이 아닌 상황이 돼버리니깐, 너무 나 흔하디흔하고, 가볍고, 흘러가고, 그런 게, 어떻게 보면 사진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이미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고, 한편 사진은 원천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것이 변용가능성으로서의 원초적인 영상, 시각적인 이미지, 그걸로 사진이 진입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깐 사진, 하나, 그 자체가 말해줄 수 있는 것 보다. 그것을 가지고 노는 사람, 혹은 사진은 하나의 텍스트, 가, 나, 다, 라, 바, 사, 그것을 어떻게 조합할 수 있는 가, 뭔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고, 소설이 나올 수도 있고, 혹은 뭔가 감탄사가 될 수도 있고,
원본으로서가 아니라 작업의 근원적인 모티브로서의 원천자료?
그렇죠! 모티브는 원천이지만, 초상권이나,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는 매체로서의 사진, 그것이 이미지로서의 변용되는 이상 원본이 아니니깐 누구도 그 사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지 않나? 말이라는 것이 언어가 되는 과정이 있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하는 것은 선사시대의 어~어~ 어 하는 그런 정도의... 뭔가 목소리를 내긴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그게 지금생각 같아서는 영원히 알아 들 수 없을 것 같은...(웃음)
사진 그 자체는... 그러면 작가는 그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을 조합을 통해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그냥 내버려둬요? 아까 관객의 몫으로 돌리는?
근데 제일 쉬운 방법은 명확한 형식을 가진 옛날에 용인되어온 방식을 끌어오는 것이 제일 쉬운 방식인 것 같아요. 잡지나 이런데서 쓰는 방식이 있잖아요. 쉽죠! 그것은 구태라고 생각해요. 노력하는 작가의 모습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고 발로 뛰고, 시간을 많이 들이고, 노력하는 진정성 있는 작가들의 시대는 저문 지 오래되지 않았는가! 그것보다 는 지금 일정기간 동안은 매체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생각을 해보는 게, 오히려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계속해서 구미작업을 병행하고 있고, 요즘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 수 있는 사진을... 찍는 것 보다. 다른 매체를 통해, 사진의 죽음을 선언해야 될 때인가? 그 죽음이 다른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탈피인가?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해 보고 있습니다.

공단 삼거리Gondan Three-way, 2012, 100x125cm

김세라Kim Sera, 2012, 125x100cm

동인척-도원 동인천역, 2014, 100x125cm

동인천-도원 채미전, 2014, 100x125cm, ed. 5-2

일식 #018, 2019, Japanese Paper and Matt, 80x60cm

Eclipse #019, 2019, Pigment Print on Japanese Paper, 60x60cm

Eclipse #020, 2019, Pigment Print on Japanese Paper, 60x60cm

Eclipse#022,2018,UVPrint,125x100cm

Eclipse#023,2018,UVPrint,100x125cm

Eclipse#024,2018,UVPrint,125x10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