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에서 순수예술 학사, 영국 왕립예술학교 (RCA)에서 사진학 석사, 영국 이스트런던 대학에서 예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왕립미술원의 브리티시 인스티튜션 어워즈 수상을 비롯해 프랑스 툴루즈 매니페스토 사진 페스티벌의 선정 작가, 핀란드 헬싱키 포토 페스티벌의 선정 작가가 되었고, 제7회 아마도 사진상과 KT&G상상마당 SKOPF 올해의 작가상 등을 받았다.  핀란드 국립미술관, 이탈리아 팔라초 타글리아페로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 러시아 크라스코야르스크 미술관 비엔날레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일본 기요사토 사진미술관, 한국 고은사진미술관, 영국 옥스포드대학교 등 다수의 기관에 작품이 영구 소장되어 있다. 
www.shinwookkim.com

Stanwell Moor, 2018, Pigment Inkjet Print, 110x145cm

SRT 수서역 앞 팔차선 도로를 자동차들이 내달린다. 김신욱 작가의 사무실은 그곳 도로변에 높이 솟은 건물에 있었다. 서쪽 창으로 자동차들이 내는 소음과 가을 오후의 태양빛이 맹렬한 기세를 떨치며 들어온다. 그렇지만 김신욱 작가는 끄떡없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관해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능숙했다. 흡습성이 좋은 운동용 티셔츠를 입은 작가는 글쓴이와 인터뷰하는 동안 필요에 따라 실내를 빠르게 오갔는데, 그 움직임은 발레처럼 가벼웠다. 
인터뷰_이근정
오, 팔뚝이 굵다. 운동이라도 하시는가? 
작가가 운동해야지, 담배만 뻑뻑 피운다고 되겠는가!(웃음)

첫 말씀이 재미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다. 당신에게 사진 작업은 어떤 의미인가?
사진 찍는 것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아버지가 광고 쪽 일을 했는데 취미가 사진이었다. 아버지 따라다니며 사진 찍는 것도 보고, 고등학교 때는 사진반 반장도 했다. 부모님한테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봐도 된다. 시작은 그렇다 해도 지금은 사진 매체에 집착하진 않는다. 사진이라는 평면 이미지만으로는 충분히 보여주기 힘든 이야기가 있다. 그동안 사진을 잘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앞으로 꼭 사진만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다른 매체가 필요하면 같이 할 생각이다.

그렇다면 사진 이미지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작가가 현실 속에서 잘라 온 사진이라는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미처 못 본 풍경이다. 사진의 매력은 그것을 보면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게 있었어? 작가는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는 사람이다. 나는 그것이 재미있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 전시도 많이 찾아본다.

창작자로서 무엇을 표현하는 데 관심 있나?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수집하여 장소나 기억이 인간과 그 주변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갖고, 특정 장소나 사건에 영향을 받는 다양한 것들과 주변에 실제로 존재하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2013년부터 작년까지 공항 주변을 다니며 작업한 것이 있다. <Unnamed Land: Air Port City>인데, 공항이 있어서 영향을 주고받는 주변 모습, 이를 통해 공항이 어떤 의미이며 어떤 장소적 특성을 갖고 있나에 초점을 맞췄다. 나는 소재나 대상을 찍는 일에 는 관심 없다. 그보다 넓은 바운더리, 민족지학이나 문화인류학에서 연구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 어떤 현상이 있으면 그것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통해 현상에 다가가는 것이다.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발견하고 접근해 나가려면 많은 것을 접해야 할 것 같다.
평소 신문 두 종을 종이신문으로 구독한다. TV는 전혀 보지 않는다. 활자를 많이 읽는다. 신문을 보는 이유는 직접적인 아이디어 소스는 아니고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논점이나 인터뷰를 보며 다양한 삶과 관점을 알게 된다. 나는 외국에서 13년을 살았다. 외국 생활에서 보고 느낀 게 많다. 작업을 할 때는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인터뷰했다. 실제로 몸으로 부딪치며 만난 사람들의 환경과 문화를 유심히 본다.

그러고 보면 작가님 작업은 큰 시공간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친가와 외가 모두 조부모님이 이북 출신이다. 외가는 평안북도, 친가는 함경남도. 어머니만 빼고 조부모님과 아버지 모두 이북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 영향을 받아서 나도 실향민 정서가 있다. 고향 상실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단과 전쟁으로 영향 받은 근대 한국인의 집단 심리에 도 관심 있다. 외국에서는 동양인 남자로서 다양한 차별을 겪으며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경험했다. 이런 경험들은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주었고 내 작업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작가님 작업을 보면 ‘무엇인가’가 있고, 그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뭔가를 찾는다는 것은 어떻게 당신의 마음을 끌었나?
누군가가 무엇을 찾는다는 행위는 무엇일까?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들여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은 진심이 들어간 행위일 것이다. 그 대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무언가를 찾고 갈구하고 알고자 하는 마음속 본질이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현장에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행위는 작가가 작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몰두할 대상이 있고, 스스로의 열망과 목적을 위해 그것을 찾는다. 무형의 동기가 유형의 모든 것을 만든다.

그렇더라 해도, 비행기든 네시든 그들이 찾는 대 상은 실체가 모호하지 않나?
실체가 없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왜 꽂힐까? 어떤 것이 사람을 끌어당기고 그 주변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는가? 실체 없는 네시를 찾으며 오십년을 보낸 사람이 지금은 네시 연구소 소장이다. 버티기만 하면 자기만의 역할이 생긴다. 신화가 생업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언젠가 네스 호수에 괴물이 없다는 걸 안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다. 평생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네스 호수의 괴물을 유지시키는 키 피규어라고 생각한다.

영국 생활은 어땠나? 골드스미스 대학은 예술 교육으로 유명하다. 들어가기 힘들지 않나?
고교 졸업하고 군대 다녀온 후 20대 중반에 갔다. 입학하기로는 골드스미스 대학보다 왕립예술학교가 더 힘들다. 영국에 2007년 처음 갔는데 2010년부터는 돈 버는 일을 같이 했다. 다양한 사업을 하고 여행사 관련 일, 공항에서 손님 픽업하는 운전 일도 오래 했다. 그렇게 돈을 벌어 월세, 학비 내고 생활비 쓰고 그러면서 작업했다. 일 년에 대여섯 번씩 해외 전시를 하며 십 년을 그렇게 살았다.

사진 작업을 하는 태도랄까, 학교에서 단련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학사과정을 밟은 골드스미스에는 사진과 가 없다. 학부에서는 파인아트를 하고, 왕립예술학교에서 석사를 하며 사진과를 전공했다. 학부 때는 전반적으로 작업하는 방식과 예술이론을 배우고 튜터와 일대일 대화를 한다. 그쪽에는 일대일 커리큘럼이 많다. 따라서 내가 작업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석사 때는 새로운 시도를 항상 장려하는 분위기였다. 영국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라고 하며 실패를 장려한다. 그리고 테크닉보다는 아이디어를 높이 산다.

작품을 완료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어느 정도 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여러 상황이나 요소가 작업을 끝나게 만든다. 공항 작업은 내가 영국을 떠나는 마지막 날 찍으며 상징적으로 종료했다. <네시를 찾아서>도 내가 그곳을 떠나며 끝났고…. 실제로 작업은 전시와 함께 혹은 전시가 종료된 후 책이 나오면서 마무리되는 것 같다.

사무실 문 옆에서 ARP라는 로고를 봤다. 책을 나타내는 느낌이다. 무엇인가?
맞다. 출판사다. Artist-Run Publishing의 약자다. 2020년 8월부터 시작했다. ‘작가가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라는 기치 아래 예술 책을 만든다. 작품집이다. 많은 부수보다는 한 권을 만들어도 잘 만들고자 한다. 일 년에 두어 종씩 내고 있다. 하도 일이 많아져서 내 책은 시작은 했는데 미뤄뒀다. 내가 만든 예술책은 영문으로 제작해 해외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퀄리티로 만들어 홍보하고 유통한다. 오랫동안 사전 조사를 했다.

계획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남달라 보인다. 어릴 때는 어떤 소년이었나?
성격과 몸이 따로 노는 아이였다. 그 갭이 컸다. 힘이 더 세고 몸도 크고 강하길 원했는데, 그것은 마음속 바람이고 몸이 못 따라왔다. 학교에서는 티가 안 나는 걸 잘했다. 수영을 잘해서 상도 받았는데, 다른 아이들은 수영대회를 직접 보지 못했으니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실제 나의 갭이 컸다. 그 갭을 군대 있으면서 좁힌 것 같다.

한국 남성이 군대생활을 회고할 때 폭력이나 상처를 회고하는 사람이 많은데 흥미롭다.
2년 2개월 동안 군 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일과를 기록했다. 일 년 동안은 후회와 반성을 쓰고 그 후 일 년은 목표를 썼다. 이렇게 하면서 이십대를 살아갈 힘을 얻은 것 같다. 일정표를 쓰는 습관도 그때 길렀다. 지금까지 날마다 일정표를 쓰고 일과를 기록한다.

다음 전시 계획은 무엇인가?
11월부터 서울 연남동 플레이스막에서 개인전을 한다. 2017년부터 작업한 미발표작인데 <The Marginal Man, 경계인> 이다. 영국에 사는 탈북자가 중심에 있다. 현재 영국은 유럽에서 탈북자가 가장 많이 사는 나라다. 600에서 800명 정도다. 그들 중 한 사람을 따라다니며 작업했다. 탈북자만의 정체성을 말하기보다는 이방인, 경계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들은 여러 이유로 고향을 떠나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 그곳에 정착했다. 그러나 정착한 사회에서 절대 주류가 될 수 없다. 되돌아갈 수도 없다. 이 사람이 사는 런던 외곽 한인타운 뉴몰든 지역의 주변적인 느낌도 보여줄 것이다. 경계인과 주변적인 공간은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두었던 개념들이다.

611-613 Bath Road, 2018, Pigment Inkjet Print, 100x130cm

Hatton Cross, 2017, Pigment Inkjet Print, 100x130cm

226.5 metre,2019, Archival Pigment print, 100x133cm

Loch Ness Rainbow, 2019, Archival Pigment print, 120x160cm


Mettlach, 2013, Inkjet print, 80x106cm

New Forest, 2012, Archival Pigment Print, 100x155cm

She is very fragile, 2020, Archival Pigment print, 50x66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