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공부했다. 갤러리 LAAB(2020, 서울, 한국), 스페이스 바(2019, 서울, 한국), 갤러리 이리툼(2018, 도쿄, 일본), 스페이스 옵트(2017, 서울, 한국), 갤러리 누다(2016, 대전, 한국), 갤러리 Void(2014, 서울, 한국), 갤러리 자작나무(2013, 서울, 한국), 한전아트센터(2010, 서울, 한국) 등에서 개인전을 했다. 아트 스페이스 J(2021, 경기, 한국), 인천아트플랫폼 (2020, 인천, 한국), 소마미술관(2017, 서울, 한국), 국립현대미술관(2016, 서울, 한국), 예술의전당(2010, 서울, 한국) 등 여러 그룹전에도 참가했다.

Goood night, 2009, Digital pigment print, 100x100cm

이파리는 떨어져도 태양은 이글거린다. 깊어가는 가을 한낮, 서초동 서리풀공원 건너편에 있는 정지필 작가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한 발 한 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정지필 작가가 그 안에서 일상을 보내고, 생각을 키우고, 그 키워낸 생각들을 시각화하는 작업실이 있다. 전시장에 내놓았던 작품들, 홍보용 펼침막, 촬영에 쓰는 각종 도구들이 실험적 레퍼토리를 공연하는 소극장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짧은 헤어스타일이 앳된 인상을 풍기는 정지필 작가는 자신의 공간에 딱 들어맞는 어조와 몸짓으로 방문객을 맞아주었다. 

인터뷰_이영욱

스튜디오에 작가님의 개성이 배어 있는 것 같다. 이곳을 언제부터 쓰셨는가?
오늘이 딱 십 년 하고 사흘 됐다. 2011년 11월 11일부터 썼다.

오, 일부러 날짜를 맞추셨나? 숫자 11이 쫙 들어갔다.
그런 건 아니다(웃음). 십 년이 지난 후로는 처음 오신 손님이다. 환영한다.

감사하다. 천천히 말씀 나눕시다. 작가님 작품 중 <태양의 자화상>은 필름이나 인화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태양의 자화상>은 일반적인 사진 재료가 아닌 것으로 사진을 찍는 시도였다. 나뭇잎, 꽃잎, 낙엽, 김 등을 필름 대신 카메라에 넣고 태양을 촬영했다. ‘지구의 모든 현상이 사진’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친한 화가가 그림을 엄청 빠른 속도로 그리는 것을 보았다. 100호, 150호 되는 그림을 하루도 안 되는 시간에 그렸다. 놀랐다. 그 화가가 작업하는 것이 사진을 찍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는 자신이 능숙하게 사용하는 재료를 써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그린다. 자신이 본 것을 변형, 조합해 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화가를 생화학적인 감광재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빛에 반응해서 본 것을 머릿속에 담았다가 그렸으니까. 조형예술의 모든 매체가 사진같이 느껴졌다. 세상 만물이 태양이 그리는 그림이다. 이것은 내 작업을 관통하는 대주제이다.

작은 것을 크게 찍은 작업도 인상적이다. 확대는 당신 작업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물을 다르게 보는 방법, 낯설게 보는 가장 쉬운 방법이 확대일 것이다. 확대하면 보이지 않던 디테일이 보인다. 확대해서 의미를 찾아 보여주려는 것이다. <작은 돈>에서 동전을 찍으면서 확대 작업을 시작했다. 작은 걸 크게 찍는 기술이 늘다 보니 모기도 찍게 되었다.

<작은 돈>에는 1원짜리 동전부터 500원짜리 동전, 그리고 여러 나라 동전이 나온다. 어떻게 촬영했나?
한 개당 200여 컷 찍었다. 작은 걸 크게 찍으려면 카메라가 많이 가까워져야 하고 또 조명에 맞는 각도를 찾아야 한다. 초점을 바꾸면서 수백 장 찍는다. 처음에는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네다섯 시간 걸렸다. 또 <이순신 장군>은 이순신 장군 얼굴이 새겨진 100원짜리 동전을 찍었는데, <작은 돈>을 찍을 때와 다르게 수직으로 찍었다. 동전 하나마다 열여섯 컷 정도 찍었는데, 초점 맞추고 하면서 두세 시간 걸렸다. 이 작업은 시간을 말하고자 한 작품이다. 그냥 보면 다 비슷해 보이는 동전들이 독자적 얼굴이 됐다. 동전마다 스크래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는 똑같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달라졌다.

<평면작업(Crush)>이나 <Give and Take>는 대상을 눌러 납작하게 만들어 촬영하셨다.
입체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저런 복잡한 것을 어떻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까 놀라웠다. 평면 작업이 입체 작업보다 상대적으로 저차원이라는 열등감이 생겼다. 그러나 평면 작업은 제한적이지만 장점이 있다. 이 장점 안에서 가능성이 엄청나다는 걸 느끼면서 나 자신의 평면 작업을 긍정하게 됐다. <평면작업 (Crush)>은 입체적인 것을 납작하게 눌러 시각적으로 재미있는 것을 만드는 시도였다. 촬영에 사용한 것은 젤리 사탕이다. ‘크러시’는 으스러뜨린다는 뜻도 있지만 반한다는 뜻도 있다. 사랑보다 더 강렬한 감정인 것 같다. 평면 작업에 대한 내 느낌을 담은 제목이다.

<Give and Take>는 눌린 모기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충돌이 일으키는 참혹함과 역설적인 아름다움도 느껴진다.
술 먹고 자다 보면 침대 주변에 내 피를 빨아먹은 모기가 앉아 있다. 유리컵으로 모기를 생포해 흔들면 모기가 힘을 못 쓴다. 그 모기를 유리판 위에 놓고 또 다른 유리판으로 눌러 촬영했다. 모기를 찍으면서 사진적인 쾌감, 그리고 시각적인 발견을 통한 쾌감을 느꼈다. 이차원 작업이 삼차원 작업에 비해 저차원이라고 생각하다가 이차원에서도 다른 걸 보여줄 수 있다는 기쁨을 느꼈다.

하나하나 개별성을 지녔지만 서로 닮은 이미지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미적인 것도 느껴진다. 창작자로서 의도한 것인가?
나는 단순하게 구성한다. 화면 안에 주제가 될 것만 찍는다. 유형학의 영향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그런 점은 사진이 피할 수 없는 특성이기도 하다. 미니멀하게 주제를 가운데에 놓고 정사각형 프레임으로 찍는다.

작가노트가 눈에 띈다. 세상과 인간사를 바라보며 느낀 것을 진솔하게 서술했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느낌도 난다.
사실 문학에는 관심 없다. 기술서적 말고는 읽지 않는다. 그렇지만 <태양의 자화상>은 ‘시’ 라고 생각한다. 카메라로 나뭇잎에 쓴 시! 시각적인 시! 내가 쓴 작가노트는 내 사고의 패턴을 담고 있을 것이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자연히 창작자가 가진 인생관에도 관심이 간다. 당신이 쓴 문장 중 “어차피 짧은 인생 그 어떤 한 순간도 부정하고 싶지 않다”는 구절이 있다.
예전에 아무 생각 없이 찍은 사진을 보면 그때 예뻤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사진도 죽음 때문에 찍는 것이 아닐까? 이 모든 게 죽음 때문에 이루어진다. 죽음이 있어서 사는 이유가 생긴다. 30대 중반에 길 가다가 문득 울음이 나올 때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벌어지면 벌어지는 거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작가님이 불교 용어로 보면 인연, 과학 용어로 보면 인과관계를 중요시하듯이, 작가님과 사진의 만남도 궁금하다. 사진은 어떻게 시작했나?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공부 외에 재밌는 걸 해보자는 생각에 사진부에 들어갔다. 그때는 사진 이미지보다는 카메라 자체가 재미있었다. 광학적 특성, 카메라의 메커니즘, 그런 게 무척 재미있어서 중앙대 사진학과에 들어갔다.

짧은 머리 스타일이 이색적이다. 어려 보이고 트렌디한 느낌도 난다.
이 머리 스타일을 고수한 것은 15년 정도 됐다. 영국에 어학연수 갔을 때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 못 자른 후로 계속 밀고 있다. 내가 직접 민다.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씩 클리퍼로 민다.

작업실에 똑같은 병이 수십 개 있다. 작업과 관련된 것인가?
술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 양키시장에서 사온 색색의 사탕을 병에 넣고 물을 부은 후 이스트를 넣어 술을 만든다.
12월에 전시한다. 인천 양키시장은 함경도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장사하는 곳이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물건들을 팔던 오래된 시장이다. 리서치하러 거기 갔을 때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 때문에 나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 시장에 있는 걸 나한테 친화적인 어떤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이 시점에서 묻고 싶다. 당신은 왜 사진을 찍는가?
이게 언어라면 한국어 다음으로 나한테 편한 것이 사진이다. 시각언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할 때 반사적으로 사진이 생각난다. 나에게 체화된 언어가 사진이다. 사진의 영역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은염 시대, 그다음 디지털 시대, 그 후로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작업을 하면서 사진에 능숙해지지만 계속 배울 건 있다. 새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찾아보게 된다. 나이 서른에 처음 창작이란 걸 했다. 그전에는 뭘 하는지 나도 몰랐다. 그렇지만 사진에 계속 매력을 느꼈다. 애쓰지 않아도 계속 배우게 된다. 재미있고 매력 있으니까.

2009년부터 작품을 발표하면서 12년이 흘렀다. 변화한 게 있다면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별 생각 없이 해왔다. 달라지는 지점이 있다면 앞으로 생길 것 같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재료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신난다. 지금부터 확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Good Night 0026, 2009, Digital pigment print, 100x100cm

이순신 장군 0011, 2016, Digital pigment print, 100x100cm

Give & take 0011, 2012, Digital pigment print, 100x100cm


Smile 0002, 2017, Digital pigment print, 100x100cm

더 뜨거운 태양, 2019, Digital pigment print, 50x50cm

Spectra - 이준형, 2020, Digital pigment print, 100x100cm

태양의 자화상 0003, 2016, Digital print, 100x100cm,